서양음악이 유입되었으며, 전통문화 예술을 말살시키기 위해 서양음악이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방관 내지 협조했던 것이 제국주의 일본의 정책이었다. 서양음악의 유입은 한국 음악 문화의 큰 변동이다.
(1) 궁중 음악의 변천
19세기 말엽은 정치 사회면에서 격변기에 해당한다. 1882년 임오군란, 1
악사도 여기에 참여하여 거문고 연주를 도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 이후 지배계층의 몰락과 함께 풍류방의 전통도 사그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음악만은‘이왕직아악부’를 통해 후대로 전해졌다. 지방에서도 이 음악은 근근이 이어졌는데 요즘은 이를‘향제 줄풍류’라 부른다.
마지막으로 양반과
악은 작곡가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작곡되어진 창작국악을 말한다. 창작음악이란 의미를 국악기를 위조로 하여서 국악 어법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현시대의 새로운 음악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2)창작 음악의 역사
국악작곡은 1939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왕직아악부는 1940년의 일본기원 2600년을 기념
악과 우리 음악에 이미 동화된 중국 음악이나 중국을 통하여 전래된 서역 계의 음악이 포함되는데, 진정한 의미의 국악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속악> 이나 <향악> 등 우리의 고유한 가락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거꾸로 국악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또는 <정악>
5. 주요국악기
〈거문고〉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이 진(晋)나라에서 보내온 칠현금(七絃琴)을 본떠서 제작한 악기로, 왕산악이 새로 100여 곡을 작곡하여 연주했더니 검은 학이 날아들어 춤을 추었다 해서 현학금(玄鶴琴)이라 했다가 후에 학자를 빼고 현금이라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