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사용되고 있는 이러한 미술용어들은 모두 서구의 미술개념을 일본에 의해 한어역(漢語譯)을 한 것으로 한자의 어의와 서구개념의 고려 후에 이루어진 용어이다. 현재 일본에 의해 정착된 용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고 그 예로 「한국화」라는 명칭의 사용을 들 수 있다.
ⅰ겸재 정선(1676~1759)
-본관: 광주
-호: 겸재․난곡
-별칭: 자 원백(元伯)
-활동분야: 예술
①그는 어떤 화가 이었는가?
안견, 장승업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화가로서, 우리나라의 산천을 독자적 화법으로 그려내어 진경산수화풍을 확립시킨 동시에 진경산수화의 발달에 지대한 공로를 남긴 화
의재허백련은 한국 남화의 대가이다.
의재의 화법은 소치에 그 뿌리가 있다. 소치는 세필을 싫어했으며 형상보다 뜻을 더 중요시했다. 그림보다 화찬을 더 중요시한 의재는 화찬을 정한 후 붓을 든다. 이것은 문인화의 시, 서, 화 3절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와 서를 우위에 놓기때문이다. 특히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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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 안에는 허씨 집안 3대의 복제된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기념관에도 복제화·수석·단지·그릇 등 허련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허련의 3남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이 남종화의 대를 이은 곳이고, 한집안 사람인 의재허백련이 이곳에서 그림을 익혀 한국 남종화의 성지로 불린다.
허백련의 광주 정착이 남도화파 형성의 근거가 되었으며, 여기에 목포의 남농 허건이 가세하였다. 이러한 근현대 전남화풍의 보다 근본적인 뿌리는 조선 말기의 소치 허련이 고향인 진도로 귀향하여 정착한 데 있다. 운림산방의 개설과 그곳에서의 화업 전승이 이루어 놓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타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