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의 얼굴이 천연두로 뒤범벅이 된 것처럼 당시의 사회는 살육의 피로 점철되던 시기였다. 나라의 기반이 쇠약해지고,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외적의 침입이 잦아졌다. 사치와 환락을 누리던 문신들은 무신들을 천대하고 멸시하며 마치 노예를 부리듯 했는데, 결국 정중부(鄭仲夫)의 난으로
않음에 있다고 설명했다.
①임춘
임춘은 무신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과거에 몇 번 실패했으며 음서로도 진출할 수 있었지만 자기 능력을 입증하고 떳떳하게 나아가려고 했다. 무신란이 닥쳐와 목숨을 구하려고 5년 동안이나 피해 다녔으며 물려받은 토지를 다 빼앗기고 처량하게 되었다.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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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인 사이의 정권쟁탈
- 중방 그때 모든 무관이 중방(重房)에 회합하고 문관으로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전부 불렀다. 이고가 그들을 모조리 죽이고자 하였으나 정중부가 제지하였다. 《고려사》 제128권 - 열전 제41 > 반역 2 > 정중부
이 중심, 고위부터 하위까지 모두 독차
몽고가 고종 18(1231년)년에 제1차 고려침입을 하고 그 이후에 몽고측은 대군을 이끌고 여러 차례 고려를 침략하였다. 몽고의 침략은 백성들이 더욱 곤고한 경지에 처하게 하였다. 이러한 내․외부적인 수난 시기가 상하의 힘을 한데 합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문학 혁신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권력을 지배한 사람은 최충헌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발탁되길 바라던 음지의 문사들이 시문으로서 최 씨에게 접근하여 관직에 오르는 첩경을 찾으려고 무척 노력하던 시기였다고도 볼 수 있다.
무신 최 씨의 집권으로 인해 대부분의 문인들은 현실의 생활기반을 상실하고 말았는데 이러한 현실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