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업적을 자랑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인 함무라비는 43년동안 바빌로니아를 통치했는데 그 기간 동안 바빌론은 서아시아 역사에서 정치와 모든 지성의 중심으로 자리했고 이는 기독교시대가 오기전까지 지속됐다.
기원전 605년경 바빌론의 왕이 된 네부카드네자르왕은 그 지역에서
정치 판도를 뒤 흔들만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산업혁명으로 축적된 자본과 상품들은 본국에서는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의 흐름은 프랑스와 독일을 넘어 유럽 각국에 정치․경제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경제 호황과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자신감 확대
이라크의 하쉬미트 왕가와 사우디의 사우드왕가 간의 갈등은 오늘날까지도 아랍세계의 정치적 대립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맥마흔·후세인 서한과 위배되는 영·불의 아랍지역 분할협정인 사이크스·피코트협정과 영국 외상이었던 발포어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태인 국가건설을 인정한다는 발포어
정치학」(서울 : 나남신서, 1997),
과거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뉴스로 터져 나오는 국제분쟁들 역시 중동지역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우리는 이라크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1920년 영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후세인 이븐 알리의 아들 파이잘(Faisal)을 위임통치령 이라크
정치적 범위와 형태가 긍정적인 것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1-1. ‘국가’로서 레바논의 형성에 대한 문제제기
오스만 시기 이 전, 레바논은 하나의 통합된 정치형태를 갖춘 역사적 경험이 부재한다. 도시 및 봉건영주를 중심으로하는 지역 등으로 ‘산개’된 형태로 존재했다. 역사적으로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