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철되고 있었다는 事實을 看過하고서는 唐의 世界帝國的 性格을 규명하기 힘들게 된다. 이는 唐의 경우에 있어서 四海一家를 추구하는 唐天子의 무한한 德化의 결과 華夷一如의 民族平等意識에 立脚하여 周邊 이민족에게 높은 문화를 傳受하고, 아울러 그들을 敎化․吸收 해왔다는 論據의 한계와
대한 혁명가로, 박은식은 ‘천개소문전’에서 그를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상의 제1인자로 손꼽았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도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들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앞서 서술하였듯이 연개소문이 중국의 입장에서는 당 태종을 망신시킨 인
일어나자 고조는 그 사변이 건성의 정권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세민에게 양위했고, 626년 그는 아버지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이어서 사방의 이민족을 제압하고 여러 민족의 추장들한테서 천가한의 존호를 받았다. 이로써 당나라는 번한의 양 사회를 포용하는 세계제국이 되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중국 당나라 시대에 이름을 날렸던 당태종에 대해서 조사하여본다. 많은 역사서나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당태종이 태평성대를 이끈 존경받아 마땅한 군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진정한 성군이었는지, 백성들을 위한 왕이었는지는 재평가를 해볼 만한 주제이다. 따라서
대한 대륙국가이다. 그러므로 고대 중국인에게는 그들의 영토가 세계의 전부일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정치적 분리주의와 통일적 이상추구라는 문제를 일으키고 군사전략을 결정하여 왔다. 즉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중국의 정치전통은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을 균형있게 조화시켜왔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