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빠르게 우경화시키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일본은 한국전쟁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고도성장의 신화를 이룩하며 70년대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SONY와 DOYOTA로 대표되는 80년대 일본경제는 미국을 따라잡을 듯한 기세로 성장하며 세계경제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이르쿠츠크파 중심의 오르그뷰로와 연계된 화요파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13인회의의 활동에까지 이어진다. 13인회의는 서울파․상해파․북풍파의 주도 아래 운용된 조선내 사회주의 그룹의 통합을 위한 조직체로서 1924년 5월 창립 회의에서 “일정한 공
. 이준식, 위의 책, 164~168쪽.
를 발족시킴으로서 조선공산당 창당 과정에서 배제된 서울파 등을 조선공산당에 통합하여 사회주의자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당시 일부 민족주의 세력의 자치론을 비판하면서 일제에 대한 비타협적 성향을 띈 민족주의자들과의 통일전선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사회조직에 관계하고 있었다. 여기에 기폭 장치를 마련한 것이 동경 유학생 신분의 김기진이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포된 신흥사회과학에 빠져든 다음 특히 계급주의를 지향한 『씨뿌리는 사람』을 탐닉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정신적인 동조자를 찾아 나서서 먼저 배재고보의 동창생인 박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