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매체들마저도 속속들이 더 편하고 쉬운 기능으로 탈바꿈하는 시대의 도래는 사람들로 하여금 빠르고 신속한 세계에의 도입을 끝없이 유도하며 온 세계가 한 덩어리로 운동하게 하여 각자의 멋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유입된 문화들이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점차 잠식해 가고
고전시가의 이해 발표
목차
시조
한호(韓濩) 집方席 내지 마라~
이항복 鐵嶺 노픈 峰에~
인평대군(麟坪大君) 바람에 휘엿노라~
윤선도(尹善道) 만흥, 오우가, 어부사시사
송시열(宋時烈) 靑山도 절로절로~
가사
작자 미상 우부가(愚夫歌)
한호(韓濩), 집方席 내지 마라~
작품 해설
작자 : 한호(韓濩, 1543-1605)
대군, 인평대군을 비롯한 종실 등을 강화로 피난하게 하였다.
14일 밤 인조도 강화로 피난하려 하였으나 이미 청나라 군에 의해 길이 막혀, 소현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피하였다. 인조는 훈련대장 신경진 등에게 성을 굳게 지킬 것을 명하고, 8도에 근왕병을 모집하도록 격문을 발하였으
1. 선원 김상용 선생은 누구인가.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가 침입하자 우의정 김상용은 왕세자비와 왕자 봉림대군(효종), 인평대군을 데리고 먼저 강화로 피난을 했다. 그러나 강화성은 곧 함락되고 왕자들은 포로가 되고 만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김상용은 적의 손에 잡혀 구
윤선도의 생애에는 몇 가지 특이한 사항들이 발견되었다. 어린 시절 생부모(生父母)를 떠나 양부모(養父母) 밑에서 지낸 것, ≪소학(小學)≫을 중시한 것, <병진소(丙辰疏)>를 올려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을 논박하다가 경원(慶源)으로 유배간 것, 인평대군(麟坪大君)과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