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중국의 열강의 의한 군사력의 중심으로 마찬가지로 구미의 근대적인 군사력과 자본주의의 경제력 앞에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그리하여 1856년 화친조약의 약속에 따라 시모다에 부임한 미국 총영사 해리스(THarris)는 로쥬(老中) 홋타 마사요시에게 전권위원을 임명하여 통
, 아시아 주둔 미군 규모가 현재와 같은 10만명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전진 배치되어야 한다고 3차 보고서의 내용을 재확인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 10만군 전진배치를 통해서 미국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미국의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국가주의 경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또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질서 속에 자리 잡고 있다가, 19세기 근대국민국가를 완성한 후 강력한 국민 통합의 역량을 그 원동력으로 세계적 제국으로 부상한 서구 열강의 압력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서구적 근대 체제에 편입되었다.
Ⅰ. 서론
일본의 우경화는 20년 이상 계속되는 내수 침체에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등으로 일본 사회 전체가 무기력해진데다가,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국, 중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그 흐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일본의 움직임은
제2차 아편 전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영국은 1856년 10월 8일 애로호 사건을 유발하여 제2차 아편 전쟁을 일으킨다. 이렇게하여 맺은 톈진 조약은 중국의 조계지를 반식민지화시켜, 빈사 상태에 빠진 중국을 완전히 침묵시킨다.
이러한 서양 열강들의 작태는 일본에게도 모범이 되어 일본도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