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물론 그 주변의 여러 민족과 국가에게 있어서 새로운 사태였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시기와 정도를 약간 달리할 뿐 모두 내우외환에 시달리게 된다. 종래의 지배체제와 국제질서 모두 내외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어 더 이상 전통질서의 뿌리는 깊고 질겼으며 외부의 도전은 거셌다. 증폭되는
조약체계 철폐라는 성과를 달성하게 된다. 일본의 근대적 외교는 서구에 대한 양이론적 개국론의 연장선에서 발전한 것으로 청을 동아시아 중화질서의 중심이 아닌 쇠약한 부패국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1876년 강화도조약당시 조선이 청의 속국임을 부정하고 독립국임을 확인시켰던 사실 역
조약체제 편입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 그러나 한편으로 양국이 조약 체결과정에서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이념에서 탈피하지 못했음을 드러냄.
② 청일 양국의 외교전략적 측면
청나라 - 이 조약을 일본을 이용하여 중국에 대한 서방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도구로 봄.
일본 - 이 조약을 한반도 진
일본의 방어적 외교노선은 러일전쟁에서 그 목적이 거의 달성한 것으로 보였다. 다시 말해, 러일전쟁에서의 승리와 그에 후속하는 러시아와의 강화조약 및 협약에 의해 일본은 조선의 실질적 지배권을 확보하였고, 나아가 만주에 대한 러시아와의 분할 지배를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러일전쟁까지의 일
조선과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통교가 중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마도를 통하여 조약을 체결하려고 하였다. 당시 조선은 대원군이 실권을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있었고 일본이 개국하여 천황의 이름으로 국서(書契,외교문서)의 형식을 바꾼 것에 대해서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