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보내어 중국 남경에 가서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으로써 국호(國號)를 고치기를 청하게 하였다. 주문(奏文)은 이러하였다.
“배신(陪臣) 조임(趙琳)이 중국 서울로부터 돌아와서 삼가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가지고 왔는데, 그 자문에, ‘삼가 황제의 칙
이성계가 있었다. 우리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그가 남긴 역사적 산물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배경을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여러 유적과 연결시켜 재조명하고자 한다.
본론
1. 사전 조사
1) 고려 말의 상황과 위화도 회군
고려 말, 원나라를 등에 업은 권
충신은 쫓겨나고 백성들은 도탄 속에서 허덕였다. 조정에는 훈구파라 하여 선비들을 미워하고 꺼리는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바른말을 잘 하고 혁신적인 기풍이 있는 젊은 사림파와 관료적이고 탐욕적인 훈구파 사이에는 갈등이 심하였다. 때마침 <성종실록>의 편찬이 시작되었는데 김종직
-한국사-
제1편 원시고대사회의 발전
1.고대사회의 발전
1) 석기와 금속시대의 비교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시기
약 50만년 전
B.C. 4000년 전
B.C. 1000년 전
B.C. 400년 전
토기
토기 없음
전기 : 원시 무 문 토기, 후기 : 즐문토기(빗살 무늬 토기)
무문 토기(무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