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회 세력은 치밀한 계획 끝에 12.12군사반란을 감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1) 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의 강제연행
실질적 육군 정식계통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정총장의 체포를 위하여 반란군 측은 12.12일에 총장공관에 우경윤 대령, 성환옥 대령, 허삼수 대
1. 서론
아래 글에 거론되는 사람들의 '씨' '전 대통령' 등의 '칭호'는 편의상 생략한다. 지금 왜 '전두환 문제'인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두 군인 박정희와 전두환. 그 중 전두환은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피살되어 역사적 인물이 되지 않고 현존의 인물로 자신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손수 거둬야 할
박정희라는 절대 권력자를 위해 만든 유신헌법과 국민의 기본 생존권을 희생시키던 불합리한 정치체제와 경제정책에 대해 국민은 엄중한 경고를 내린 것이다.
제10대 총선결과는 유신정권의 유화책을 이끌어내어 김대중 전 신민당 대통령후보가 1978년 12월 27일 형 집행면제로 석방된다. 그리고 1979년
대한 불만도 매우 강하였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 1963년 전두환을 회장으로 하는 하나회가 탄생되었다.
(2) 박정희와 전두환의 호혜적 관계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군대에서 선배 장교들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하나회와 같은 사조직이 생겨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1961년 박정
전두환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 의해 제거될 가능성을 염려하였다. 군 강경파세력의 위기감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 의한 이건영(李建榮)과 장태완(張泰玩)이 핵심 보직에 임명되고 전두환의 좌천설이 유포되면서 확대되었다. 이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극우 강경파 소장 세력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