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지배 아래 편입시켰다. 휴전 뒤 체결된 ‘한미우호통상 및 항해조약’을 통해 미국자본은 마치 남한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면서 한국경제를 자신의 부속물로 만들 수 있었다. 유성하 지음, 「한미관계의 발자취」, 대동, 1991, p.164.
이러한 과정을 거쳐 미국은 일제식민통치의 멍에를 벗겨준
6.25전쟁이후 아프리카 잠비아 수준이었던 대한민국을 20년간 세계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한 기초를 닦은 위대한 장본인으로 우린 알아왔다. 90년대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진정으로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정치가 실현되기 시작하면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론에 대
정치의 주체’로 보지 못한데 기인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은 소련과 동구에서의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원인이 사회주의 자체가 갖는 모순과 비효율, 한계에 있다는 통상의 견해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은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의 역사적 전환점에서 노동자․농민이 속수무책이
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카이로회담에서 나라의 독립이 약속은 되어 있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에 미소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미소 양군의 한반도 진주 목적은 일본군의 무장해제 등 전후처리에 있었다).
정치를 국가의 기본방침으로 삼고 있다.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남도는 지난해 7월 대규모 수해가 발생, 수확량이 예년에 비해 급감했으며, 군을 우선시하는 식량배급 정책 때문에 식량의 대부분 군량미로 공출당해 농장원들은 2,3개월 치의 식량밖에 배급받지 못해 기아가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