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러시아 혁명의 발발과 함께 사태는 호전되었다. 75세의 고령인 크로포트킨은 서둘러 조국으로 돌아왔다. 1917년 6월 망명한 지 40년 만에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임시정부의 교육장관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19
Ⅰ. 탐구취지
무정부주의는 권력적 지배와 국가, 정부와 같은 권력기관의 존재를 부정하고, 민간의 자유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상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점 때문에 근대 국가에서 두드러진 진보를 보이게 된다. 또한 이는 서양의 역사에 있어 19C를 지나는 동안 마르크스주의와 대결양상을
정치학, 문화 등 안 다루는 것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며 그의 사상은 숱한 경쟁 이론들과의 논쟁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로 여기서는 그의 주요 논적(論敵)인 심층생태주의 및 마르크스주의와의 대비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북친의 첫 번째 논적(論
크로포트킨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의 사회 생태주의는 서구의 급진주의 전통에서 생태 문제의 해결을 찾는다. 생태계 파괴의 근본 원인을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있다고 보지 않고 통제와 지배라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연계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생태 위기의 극복은 모든 인간이 지배와
크로포트킨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의 사회 생태주의는 서구의 급진주의 전통에서 생태 문제의 해결을 찾는다. 생태계 파괴의 근본 원인을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있다고 보지 않고 통제와 지배라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연계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생태 위기의 극복은 모든 인간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