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일성결교회 ‘사회복지국’
제일성결교회는 1966년 9월 14일 수재민 정착지인 시흥2동에 가마니 7장을 깔아놓고 세 명이 예배드림으로 설립되었는데, 그와 동시에 노인 복지가 전혀 없었던 금천구에서 최초의 노인 복리를 실현했다.
1999년 당시 금천구에는 노인 복리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세속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양적 성장과 부와 권위 중심, 그리고 믿음과 가치의 세속화라는 세 가지의 큰 세속화 흐름을 쫓아가게 되었다.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물질주의가 교회내로 들어오게 되면서 성장제일주의라는 가치관이 형성되었다. 또한 이와 함
교회를 포함하여 세계 10대 대형교회명단에 우리나라의 교회가 다섯 개나 들어있다. almanac Christian World, 1993 ~ 1994에 근거함.
이와 동반하여 질적인 면에서도 한국사회에 미치는 기독교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정치부분에서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급 인사들 가운데 상당
들어가는 말
사회 변동에 따라 종교 또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변화의 과정에 있으며 종교의 세속화 논쟁 속에 한국 교회는 질타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여러 대중매체와 설문 조사 등을 통해 전해진다. 따라서 사회에 만연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직시하고, 결국에는 사회의 요구에 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재입국한 각국 선교부와 대한성서공회,
대한기독교 청년회, 대한 여자 기독교 청년회를 포함한 당시 남한 기독교를 대표하던 거의 모든 단체들이 참여했다.
조선기독교 연합회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한국기독교 연합회로 명칭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