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좌익세력발전과 자주교육운동
해방공간의 제주의 상황은 대체로 다른 지역의 상황과 비슷하나, 인구이동이 현저히 많았고 자영농이 상당히 증가해 토지문제보다는 농민운동 · 곡물수집문제 등 민중 생존문제 등이 더 시급했다는 게 특징이다. 그 대략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주도민에게 고통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사건은 풍헌 등이 어느 정도 부를 소유한 상층농민에게 주어졌던 향직이고, 이들은 조선 말기의 신분제의 붕괴에 편승하여 계속적으로 신분향상을 추구하였음을 생각할 때, 양재해 등이 자신들의 신분상승의 욕구를 열악한 경제적 조건에 대한 도민
Ⅰ. 머리말
2013년은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65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 탓인지 올해에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지슬’이라는 독립영화가 3월 21일에 개봉을 했고, 독립영화로는 최고의 선전을 한 채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현재의 사람들에게 내륙과 동떨어진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은 생소하
Ⅰ. 제주도(제주특별자치도)의 조선사회
18세기와 19세기의 초기부터 조선사회는 농업, 상공업, 사회신분 등 사회 전반에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농업기술의 발전에 따른 농업생산성의 증대와 그에 따른 농민층 분해의 촉진, 상업, 수공업, 광업의 성장과 그에 따른 상품 화폐경제의 발전,
3항쟁(제주 4 3사건)의 정의
‘4.3’이란 제주도에서 5백여 명 미만의 무장자위대가 군정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극우세력에게 무력 행동을 개시했던 1948년 4월 3일을 가리킨다. 이 때 무장대는 남한만의 단선.단정 저지를 통한 자주적 통일민족국가 수립, 친일 경력의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추방을 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