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승사(承詞)
三三五五 冶遊園 야유원冶遊園 : 홍등청루(紅燈靑樓)의 술집.
(야유원)에 새 사람이 나단 말가?
꽃 피고 날 저물 제 定處(정처) 없이 나가 있어,
白馬 金鞭(금편)으로 어데 어데 머므는고.
遠近(원근)을 모르거니 消息(소식)이야 더욱 알랴?
因緣(인연)을 그쳤은들 생각이야 없을
니치렌의 일련종
에이사이의 임제종과 도겐의 조동종
2. 가마쿠라 신불교의 출현
★ 신불교의 공통점
① 남도·헤이안의 불교가 귀족적인 경향을 띤 것에 대한
반발로 생겨남
② 귀족들만이 할 수 있었던 불경의 연구나 사원에 대한 기진
등의 행동이 왕생이나 성불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님
③ 무사,
조동종을 연합하겠다는 ‘연합맹약’이 체결되자 앞장서서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하여 나오게 된 것이 그 해 9월에 탈고한 <조선불교 유신론>이다.
한용운의 불교를 통한 주체성 확보, 항일저항운동은 주로 조직활동을 통해 나타났다. 그 단적인 보기가 되는 것이 1911년 송광사 궐기이며, 1930년
조동종대학림에서 3개월간 불교와 동양철학을 연구했다. 1911년 만주의 교포실정을 알아보기 위해 도만했다가 교포로부터 밀정으로 외심을 받아 총격을 당해, 이것이 만성 요두증의 원인이 되었다.
이 무렵 친일 승려 이 희광 일파가 원종종무원을 설립,1910년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동종과 연합맹약을
조동종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 아사다 후상 교수와 교유하 고 유학중이던 최린과도 사귄 뒤 그해 10월 귀국.
-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게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
- 12월 10일, 서울에 경성명진측량강습소를 개설, 소장에 취임
1910년
-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 탈고.
1911년
- 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