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서적을 읽거나 일본화집 등을 뒤적거리면서 서양미술을 이해했다. 따라서 일본식 사고의 영향이 필연적으로 국내의 지식인, 미술인 사이에 퍼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제시대 미술인들의 문화적 활동에는 두 가지의 커다란 흐름이 작용했다. 하나는 조선총독부주최 ‘조선미술전람회’
미술원은 8년 후에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으나 김은호(金殷鎬) ·이상범(李象範) ·노수현(盧壽鉉) 등 여러 대가를 배출하였다. 이들 전통화가들은 18년 서화협회(書畵協會)를 조직하여 활동의 기반으로 삼았으나, 22년 조선총독부의 선전(鮮展:조선미술전람회)이 열리고 서양화가 유입됨으로써 30년대에
영향,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계속하여 18세인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수채화 <봄이 오다>로 입선.
가난한 환경 속에서 가난한 이웃들을 소재로 작품활동. 독특한 작품세계 확립.
1957년 심혈을 기울여 그린 대작 <세 여인>이 국전에서 낙선
=> 이 때문에 과음, 백내장, 간경화 등 건강 악화
서론
디자인의 역사는 근대화의 역사이다. 봉건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시민사회를 이끌어 낸 프랑스 시민혁명, 산업화를 통해 대량생산 체제와 대중사회를 이끌어 낸 영국의 산업혁명. 이 둘은 근대사회로의 전환점이 되면서 그 새로운 시대를 대표할 예술 작품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그만큼 디자인
미술에 관심이 있던 아사가와(淺川巧)가 경복궁내 집경당에 조선민족미술관을 개설하였으나 두드러진 활동은 펼치지 못하였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의 본관 건물이 불과 158평에 불과하여 1939년 경복궁 내에 조선총독부미술관을 준공하였으나 조선미술전람회 등 기획전을 개최하는 정도로 그쳐 상설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