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국민에게 많은 적대감을 안겨 준 대상과 무역을 다시 재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통신사의 왕래에 따른 근 200년 간 일본과 한국은 이 지역의 평화와 선린관계를 지속했으며, 동시에 여태까지 보아온 바와 같이 문화교류 차원
Ⅰ. 삼국시대 한∙일 음식문화교류
<술과 누룩>
[고사기]
"술의 양조에 관해서는 오진 천황 시대, 백제에서 니호, 다른 이름으로 스스코리(須須許理)라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와서 좋은 술을 제조해서 헌상했다. 천황은 이 술에 취해 기분이 매우 좋아서, '스스코리가 빚은 향기로운 술에 이 몸이
조선조정과 도쿠가와 막부 모두 재정이 크게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고 또 18세기 중반 이후 일본이 조선을 보는 시각이 전과 다르게 비우호적인 쪽으로 기울어진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 때 더욱 중요한 것은 朝鮮朝廷, 德川幕府, 對馬藩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서로 맞물려 들어가서 역지통신이 실시
조선통신사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논란은 과연 통신사는 朝貢使인가 하는 점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사학계에서는 침략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조선통신사를 조공사로 여기는 관점을 통설화 시켰다. 현대에 와서는 이런 관점은 많이 순화되어 한국 사학계와의 연계연구까지 이루어질 정도로
일본의 술에 대한 기록
"술의 양조에 관해서는 오진 천황 시대, 백제에서 니호, 다른 이름으로 스스코리(須須許理)라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와서 좋은 술을 제조해서 헌상했다. 천황은 이 술에 취해 기분이 매우 좋아서, '스스코리가 빚은 향기로운 술에 이 몸이 취했도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술, 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