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대표적인 국문 시가이다.
*초기에는 주로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지어졌지만, 조선후기로 오면 작자층이 확대되어 서민과 양반 사대부 계층의 부녀자들이 가사 창작에 참여하여 그들의 애환을 표출했다.
가사의 형식
3,4조 또는 4,4조를 기조로 한 4음보의 연속체 운문이며 행(行)의
가사를 ‘운율적 생활의 일부’라는 ‘시가(詩歌)’ 개념으로 다루었으나 후에 그 전의 태도를 자기 비판하면서 ‘시가는 운문이지만 운문은 시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가사는 형식상 시가이지만 내용상 문필’이기 때문에 시가와 문필 중 어디에도 귀속될 수 없다며 ‘시가, 가사, 문필
양반, 사대부 계층의 주도로 문학이 향유되었으며 시조나 가사 등 운문문학을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또한 고려 중기에 발생한 시조가 이 시기에 와서 사대부 계층에게 일반화 되었으며, 한문소설이 등장함과 동시에 소설문학의 시대가 열렸다. 조선후기에는 양반과 사대부의 권위가 추락하며 일반 평
가사가 시와 마찬가지로 세계 및 객체와의 조우를 통한 독자성 구축이란 내적 행동양식인 서정성을 기반으로 여기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조선 전기 가사는 시조의 서정성과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비슷한 시기 사대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조와 정신적 거리가 일치됨을 확인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