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법을 실시하는 등 국가의 수취체제를 개편하기에 이르렀다. 대동법은 교환경제의 발달을 전제로 하여 시행이 가능하였던 것이지만, 대동법의 확대시행은 교환경제의 발달을 한층 더 촉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즉 조선시대의 상공업은 왜란을 겪으면서 정부의 집권적 통치력이 약화됨에 따라
발달하였고 전국적인 시장권이 형성되었다. 나아가 그것은 물자의 지역 간 이동을 촉진하는 운송체계의 발달을 가져오게 하였다. 17세기 이후 대동법의 실시로 공인이 대두하면서 공납제에 의하여 공공물자의 조달이 이루어졌으며 인구증가에 따라 도시가 성장하면서 상품경제가 현저하게 발달하였다
조선시대에 시장이 들어오면서 15~16세기에는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상설화 되었음.
17세기에는 밀무역이 중심이 되었으나 외국과의 무역으로 금속화폐유통으로 이어지고 시전상인은 대동법으로 인해 금난전권을 행사했음.
1791년 신해통공을 발표하여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에게 주었던 금난 전권
해체시킨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게 되는 데 그것을 살펴보면,
첫째, 시장의 발달을 들 수 있다.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해 교환경제가 자리잡게 되고, 이것은 중세의 봉건적인 자급자족체제가 붕괴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체제의 초기자본주 의의 발달을 의미한다.
시대 이전부터 설치된 시장이 있었다고 알 수 있다.
중국의 역사기록인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의 시장에서는 모든 부녀들이 장사를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라 소지왕12년에 경시가 처음 열렸으며 지증왕 10년에는 동시, 효소왕4년에는 서시와 남시를 설치하여 각기 시전이라는 관리를 두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