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조선과 수교가 없다는 점과 조선은 정치적 독립 국가라는점 등을 들어 프랑스 정부의 직접 개입 없이 현지 사령관인 로즈의 주재하에 군사적 응징 원정을 단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로즈의 제1차 원정은 강화 해협을 중심으로한 수도 서울까지의 수로를 탐사하기 위한 예비적 탐사 원정이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맺은 조선 최초의 근대화 조약이자 불평등조약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 허용).
1882
조·미 수호 통상 조약(朝·美 修好 通商 條約)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맺은 조약 (치외법권, 최혜국대우 규정).
1882
임오군란(壬午軍亂)
민씨정권에 대한 도시
개화파는 일본의 힘을 활용하는 동시에 개화파 자체의 군사력을 중심을 정변을 단행할 계획을 세웠다. 특집 : 동양사의 미적 소통 ; 연구논문 : 갑신정변 주도 개화파의 현실인식과 정치리더십, 김현철, 2002, 국제문화학회, p.149
또한 갑신정변을 단행할 시기에 중국과 프랑스의 월남 분쟁이 밀접히 연
조선에 전래된 것은 17세기 초부터였는데, 최초의 것은 세계지도와 마테오 리치가 지은 《천주실의》였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문물과의 접촉으로 영국․프랑스 등의 문명국이 있음을 알게 되어 그들의 세계관에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천문학을 비롯한 서양학술의 성과에 대하여 놀라, 당시
일본의 조선 침략의 야욕을 위해 실시한 개혁으로 대원군을 앞세워 민씨일파를 축출하였으며, 김홍집을 중심으로 하는 온건개화파의 친일정부를 수립하여 국정개혁을 단행하였다.
1895 을미사변 -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으로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