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어찌하여 시경은 자주 인용하면서 虞書(우서)와 夏書(하서)같은 것은 인용하지 않았겠는가 여기에 있어서 고대 문헌 가운에 비교적 믿을 수 있는 國語(국어) 가운에서 신의 관념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책(楚語)에서 초소왕과 관야부가 문답한 것을 보면 비록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고
맹자가 의(義)를 강조했다면, 묵자는 애(愛)를 강조했는데, 그의 애는 정확히 말해서 이타적인 애, 즉 겸애(兼愛)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다시 묵적지수로 논의를 돌리자면, 이 말에는 대단히 견고한 반전주의 논리가 들어 있다는 점이 간과되는 것 같다. 묵자는 사상 최초의 반전평화주의자로 꼽힌다.
동서양고전의 이해 C형 현토완역논어집주
[현토완역논어집주] 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1, 인상 깊은 구절
1) 誠實히 하는 것을 信이라 이른다. 傳은 스승에게 傳受받은 것이요, 학습은 자기 몸에 익숙히 함을 말한다. 증자는 이 세 가지로써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여 이런 잘못이 있으면 고
학교 교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소수림왕 2년(372)에 태학을 세워 자제를 교육했다.”고 한데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에 대한 기록 중 최초의 것이다. 이 시기는 중국의 전진(前秦)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때로 전진(前秦)의 영향으로 태학이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1) 민중불교의 대명사, 백련교와 백운교
5대 10국 이후에는 불교가 몰락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교가 민중과 가장 긴밀하게 밀착되었던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선불교는 번쇄하고 비현실적인 논리에 문제를 제기하고 출발하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자신 역시 비현실적이고 관념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