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은 백이정, 우탁, 이제현, 이인복 등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나, 충분히 소화되어 토착화하기 시작한 것은 牧隱 李穡에 이르러서였다. 목은 이색에 의하여 수용되고 정착된 한국의 성리학은 그 뒤 권근 등으로 이어지다가 퇴계 이황에 의하여 완성되는 수양철학의 계열과 정몽주, 김종직 등으로 이
성리학의 교육 목표는 存心養性(항상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천부의 본성을 잘 기른다는 뜻)과 窮理(도리를 궁구한다, 즉 지식을 확실히 한다는 뜻)이며 성리학 교육의 목적은 선인 양성(최종목적은 성현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교육내용은 소학, 사서삼경 등 유교경전이며 교육방법은 성현의 행실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지면서 기묘사화을사사화 등의 희생을 겪었으나 도학의 의리정신은 면면히 계승되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였으며, 송대의 성리학이 이 땅에 전래된 지 300년 가까이 되어서였다. 즉, 이때 한국 유학의 쌍벽인 이퇴계(李退溪)와 이율곡(李栗谷)
조광조 중심의 사림파가 축출된 사건. 오직 도학사상만을 강조하여 훈구파를 소인으로 지목하고, 위훈삭제 사건으로 음모에 휘둘림.
지역적_ 경기도, 황해도 남부, 그리고 충청도 북부를 아우르는 지역
학문적_이이(李珥)의 학설을 따르는 주기적(主氣的) 경향의 성리학자
기호학파_경기도∙
(性卽理)’의 학설을 폈으며, 그 밖에 주돈이(周敦)·장재(張載)·소옹(邵雍) 등이 여러 학설을 편 것을 남송(南宋)의 주희(朱熹:朱子)가 집성(集成)·정리하여 철학의 체계를 세운 것이 성리학으로, 일명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육상산(陸象山)은 ‘심즉리(心卽理)’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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