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였으며, 송대의 성리학이 이 땅에 전래된 지 300년 가까이 되어서였다. 즉, 이때 한국 유학의 쌍벽인 이퇴계(李退溪)와 이율곡(李栗谷)이 태어났으며, 서화담(徐花潭)이항(李恒)김인후(金麟厚)기대승(奇大升), 그리고 성혼(成渾) 등도 모두 같은 시대의 성리
학파(이용후생학파), 그리고 제 3기는 19세기 전반의 실사구시학파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천주실의>를 소개한 책으로 유명한 <지봉유설 芝峰類說>을 쓴 이광(李光 1563-1628), 성리학에서 실학으로의 전환점에 서 있는 <반계수록 磻溪隨錄>을 저술한 유형원(柳馨遠), 탈주자학적 경학해석에 물꼬를 텄던
성리학은 그 뒤 권근 등으로 이어지다가 퇴계 이황에 의하여 완성되는 수양철학의 계열과 정몽주, 김종직 등으로 이어지다가 靜庵 趙光祖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시도 되는 至治主義運動의 계열로 분화되어 전개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먼저 한국성리학에서 나타나는 수양론의 계열을 알아보
율곡 사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율곡의 성리학을 주자학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만든 사람은 우암 송시열이다. 우암은 퇴계와 우복의 학설을 공격하고 율곡의 설이 옳음을 논증하는데 평생을 바쳐 노력했는데 이는 당시에 예송문제로 격화된 당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암이 48세때 유직柳稷등이 율
성리학의 교조화 현상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탈성리학 경향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II. 조선후기 성리학적 분파
1.영남학파(嶺南學派) 성리학의 특성
(1)퇴계학파(退溪學派)
이황과 그 문인 후학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이다. 먼저 이황 학문의 특징을 살펴보면 그의 이기,심성론은 기본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