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였으며, 송대의 성리학이 이 땅에 전래된 지 300년 가까이 되어서였다. 즉, 이때 한국 유학의 쌍벽인 이퇴계(李退溪)와 이율곡(李栗谷)이 태어났으며, 서화담(徐花潭)이항(李恒)김인후(金麟厚)기대승(奇大升), 그리고 성혼(成渾) 등도 모두 같은 시대의 성리
Ⅰ. 주자학(성리학)의 기능
인간들의 상호관계를 규정하는 체계적인 이념→ 군신․부자․부부의 관계를 상하의 주종관계로 규정한 삼강은 오륜의 핵심이다.
1. 효
인간이 평생 지켜야 할 도리이다. 모든 행위의 근원인 동시에 모든 사회관계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강조되었다.
효가 임금에
성리학은 백이정, 우탁, 이제현, 이인복 등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나, 충분히 소화되어 토착화하기 시작한 것은 牧隱 李穡에 이르러서였다. 목은 이색에 의하여 수용되고 정착된 한국의 성리학은 그 뒤 권근 등으로 이어지다가 퇴계 이황에 의하여 완성되는 수양철학의 계열과 정몽주, 김종직 등으로 이
Ⅰ. 성리학(주자학)의 성격
조선의 성리학은 퇴계와 율곡의 학설을 계승하여 전개되어 가는데 퇴계의 이기불상잡의 강조, 사단칠정의 이기호발이라는 입장과 율곡의 이기혼륜무간 사단칠정의 기발이승일도의 입장이 각각 그들의 문도로 이어져 크게 보면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라는 두개의 학파가 양
율곡 사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율곡의 성리학을 주자학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만든 사람은 우암 송시열이다. 우암은 퇴계와 우복의 학설을 공격하고 율곡의 설이 옳음을 논증하는데 평생을 바쳐 노력했는데 이는 당시에 예송문제로 격화된 당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암이 48세때 유직柳稷등이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