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만 있었을 뿐이다. 이 같은 理가 있기에 이같은 천지가 있다. 만일 이러한 理가 없다면 이러한 천지도 없고, 사람과 사물도 없으며,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理가 있으므로 氣가 있고, 氣가 유행하여 만물을 발육시킨다.ꡓ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理와 氣의 관계를 말 타는 사람과 말
성즉이설(性卽理說)을 제창하였고, 상산은 치지(致知)를 주로 한 심즉이설(心卽理說)을 제창하였다.
형제와 만나기도 했다. 47세 때 부인을 잃고 『詩經』을 탐독했고, 다음해에는 『詩集傳序』를 저술하였다. 朱子는 主簿 생활을 끝낸 뒤 약 20년 동안 관리를 우대하여 급여하는 사록만 받았을 뿐 전혀
理氣分殊’라는 말로 표현해 왔거니와 여기서 율곡이 그것은 ‘理通氣局’이라는 새로운 철학용어을 창안하여 사용하고, 또 그 원인을 이기의 무형과 유형에서 오는 차이로 규명한 사실은 참으로 한국 철학의 독창성을 높인 탁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율곡이 제시한 ‘이통기국’이라는 독자적 명제
이르러 유학은 정치적 또는 종교적 사회체제의 변화에 따라 노불 사상을 가미하면서 이론적으로 심화되고 철학적인 체제를 갖추게되면서 천리, 성즉이 등의 여러 학설이 나왔다. 이것을 주희가 집성, 정리하여 철학의 세계를 세운 것이 성리학으로 일명 주자학이라고 한다.
② 불교와 도교의 영향
이다.
향촌사회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재지사족의 입장에서 전호 농민과의 원만한 관계의 유지는 존립의 성패가 달렸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였기 때문에 사족들은 교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이들을 성리학적 관념 속으로 끌어들였다.
2. 사림파와 훈구파
같은 사족으로서 고려의 불교적 향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