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돌보는 호스피스 자체가 최고의 수행법”이라며 “다른 이가 죽는 것을 지켜보면 바로 그 순간 우리 삶을 괴롭히던 집착과 미움 등의 번뇌들이 떨어져나간다”고 말한다. 따라서 죽음을 돌보는 호스피스 활동은 스님에 의하면 타인의 죽음을 돌보는 것 이전에 자신의 삶을 돌보는 것이란다.
죽음의 길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이렇듯 삶과 죽음은 늘 함께 공존한다. 과거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만 여겨 죽음에 대해 언급하거나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삶을 진정으로 영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게
존재이다. 즉 자신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여기에서 윤리적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박선목(1987), 서양 윤리학의 흐름, 세진사, pp.230-231.
이 글에서는 세 명의 실존주의 철학자-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사르트르-의 철학을 소개하고, 실존주의
사람에게 존재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가 두려움의 어두운 측면과 연루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존재는 빛과 즐거운 일(das Heitere)과 어우러져 있다. 존재는 "자기 마음대로 방침을 정한다". "존재를 사유하는 것"은 자신의 (참된) 집에 이르는 것이다. 하이데거 연구자들은 존재와
존재는 마음씀’으로 천명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근본적 정상성인 불안이 성찰되고 있다.
제 2편에서는 우선 실존의 방면에서 죽음에 대해 검토하고, 자신의 본래성을 찾는 근거에 대해, 그리고 1편에서 언급한 ‘마음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간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하이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