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간쑤성[甘肅省] 룽시현[짱西縣]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모두 5만여 수에 달하는 당시(唐詩)는 기원전의 주나라부터 남북조시내까지의 1천6백여 년 동안 생산된 시가 보다 양적으로 두세 배가 될 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다양성과 창조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 풍부했다. 이렇듯 화려한 당대에 활약했던 이백과두보야말로 각기 개성과 업적을 남긴 중국의
이백과 ‘시사’라고 불리우는 두보이다. 중당은 성당을 계승하여 두보의 영향권에 있어 현실주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내용과 기교상 모두 진일보한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만당은 정치가 혼미해져서 나라가 망해 가는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특성으로 인하여 시도 화사한 표현에 주력하여
중국인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현종과 양귀비의 아름다운 사랑과 그 비극적 말로를 주제로 삼아 몰락하는 제국의 쓸쓸한 황혼은 즐겨 노래했다. 현종의 이름은 이융기. 예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이씨의 황실은 할머니 측천무후가 시작한 새로운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야망에 가득찬 여성들-
중국에 망명한 뒤에도 국내의 문단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한문학 분야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하였으며 망명지 중국에서는 우리나라 한문학을 중국에 소개하는데 진력하는 한편 그와 교유한 남방의 문인들로부터 양계초(중국 청말 중화민국 초의 계몽 사상가이자 문학가)에 필적하는 대가로 인정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