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법으로는 생산증진을 목적으로 한 어전법淤田法과 농전수리법農田水利法이 있다. 어전법은 하천의 진흙을 메마른 토지에 끌어들여 비옥한 토지로 바꾸는 것이다. 왕안석은 어전사淤田司라는 관청을 특설하여 징발한 농민을 사용하여 단숨에 공사를 행한 결과 모두 십수만 경頃에 이르는 농
전개된다. 태조시대에 강남(江南)·사천(四川)에 할거하던 여러 나라는 멸망하여 천하가 거의 평정되었으나 산서(山西)의 북한(北漢)은 거란(契丹)의 원조가 있어 그의 평정은 태종시대로 승계되었다. 때마침 거란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냉각된 것을 안 태종은 일거에 북한을 멸망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1. 송나라의 서민 문화
1.1. 차(茶)
중국의 차 역사에 있어서 송대는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던 시기이다. 송대에는 당 시기의 차를 끓여 마시는 방법을 개량하였고, 색깔과 향기의 통일을 중요시 하였다. 송대 시민들은 차와 예술을 융합하는 과정에 있었는데 문학, 예술 등 순수한 정신문화에 직접적인
왕안석은 양저우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다음 부임명령을 기다리기 위해 수도의 지사로 부임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중앙 관료보다는 좀더 수입이 많은 지방관료를 희망한 것이다. 왕안석은 지방 지사를 지내면서 농업치수를 위한 공사 등을 벌여 큰 성과를 올렸다. 이때 지방에서 추진했던 정책들
왕안석을 발탁하여 신법을 단행하게 하자, 이에 반대하여 새로 임명된 추밀부사를 사퇴하고, 1070년에 지방으로 나갔다. 당시 그는 편년체의 역사 《자치통감》을 쓰고 있었다. 신종도 그 책의 완성을 크게 기대하여 편집의 편의를 제공, 그의 뜻대로 뤄양에 거주하며 편집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돌봐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