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산당 집권 이후의 중화주의
(1) 민족주의에서 맑스-레닌주의로의 이행
1911년 신해혁명을 계기로 동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청을 대신하게 된다. 중국 대륙에 있어 통일적인 강력한 국가 형성은 최대의 과제였다. 서태후(西太后)는 근대적 개혁 프로그램을 실행하고자 했으나 약화
민주화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러한 일당 체제에 의해 부과된 민주화는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 성장 속에서 민주화를 추구하려는 중산층의 의지에는 부합하였으나 민주주의의 빠른 발전은 저해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구 지배블럭인 국민당이 주도한 면이 크다. 권위주의적 통치체제 변형의 중요한 출
Ⅰ. 일본의 우경화
일본에서 일고 있는 우경화 바람은 위에서 지적한 통속적인 의미에서의 우경화와는 번지수를 달리한다. 정확히 말하면 '국수주의' 또는 '국가주의'로의 회귀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우익'의 사상적 기조는 '자유'나 '평등'이란 유럽적 가치 개념과는 관계가 없다. 한마디로 내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한문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주변 한국은 자발적으로 중심 중국의 한문 유교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중심에서 받아들인 문화로 중심을 넘어서는 발전을 이룩하였다. 중심과 주변이 이원화된 시대 중세에 중국은 그 중심으로서 중화주의를 구현하였다.
중국
중국이 과거의 화려했던 중화주의 중심국가로 부활을 향하여 힘찬 비상을 시작하면서 미국의 일방 주의적 외교노선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중국이 지목되고 있으며 두 나라의 힘의 대결이 눈앞에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결국 미국의 영향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부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