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삼엄한 사상통제로 인해 풍정과 일사에만 주력했기 때문에 사실상 청초기보다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엽을 인정소설의 고조기라 평가하는 이유는 고도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지닌 홍루몽의 문학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작가와 등장인물에 관한 평론도 속
소설의 명칭과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론이 없는 실정이다. 인정소설이란 명칭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노신(魯迅)이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에서 ‘명대의 인정소설[明之人情小說]’과 ‘청대의 인정소설[淸之人情小說]’이라는 제목으로 이 유파를 설명하면서부터이며, 노신
명대의 대표적인 금서(禁書)로는 《수호전(水滸傳)》과 《금병매(金甁梅)》를 들 수 있다. 《수호전》은 ‘관이 압박하면 민이 반항한다’는 민중의 의지와 희망이 반영되고 도둑질을 가르치는 저술이라 하여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왔으며, 《금병매》는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한 외설문학의 대표서로
소설 작가들은 금병매이후 인정파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여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일과 평범한 인물들을 소설세계로 끌어 들였으며, 이로써 소설에 새로운 혈액을 공급한 셈이다.
이러한 제재의 선택은 작품으로 하여금 진실감을 갖게 하였으며, 아울러 당시의 세태를 사실적으로 반
중국연경을 내방하였는바 이때를 계기로 하여 중국의 문화를 접촉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특히 중국명대소설들을 널리 접촉하고 연구하였는바 그가 <수호전>을 백독하였다고 당시 중국의 신흥문예인 <삼국지연의>나 <수호지> 등을 높이 평가하였다는 사실은 이를 말해준다.
이 점에서 <홍길동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