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좌상인 조준은 “굶주리는 백성이 국내 각처에 있거늘 만일 그들 전원을 국가 양곡으로 구제하게 되면 국가의 전 비축미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여 이에 동의치 않았는데, 이 말을 들은 태조는 “현재 경상도에 양곡이 있거늘 어찌 빈민을 구제치 아니하겠느냐” 하여 관곡으로 이들을 구제케
→ 식민지 수탈론
산미증식계획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에 이르러 그 성과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원형윤, 위의 글, 2010
당시 연구를 통하여 산미증식계획 실시의 목적이 일본의 식량부족문제 해결에 있었고,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로 인해 조선 내부의 식량 수급사정이 악화되었고, 실행과정에서 상
3) 농가경제의 피폐
a) 농가수지 적자와 부채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가경제 상태에 대해서는 1925년 9월 내무국 사회과에서 발표한 「농가경제에 관한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주를 포함한 전체 농가 호수의 46.6%에 해당하는 1,271,236호가 수지 적자였으며 지주와 자작농은
인해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뒤에 차근차근히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지만 우선 이런 논의를 하기에 앞서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우선 알아보고 이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자본주의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머리말 - 식민지 근대화론의 개괄
- 60~70년대의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이 예전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맹아를 찾으며 정체론을 강요하는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조선의 내재적 발전론으로 이어졌다. 곧, 내재적 발전론의 연구는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