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 등 많은 건물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 정궁으로 사용한 후 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 이었다. 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
경복궁, 행궁인 창경궁과 경희궁에서는 정문으로부터 정전, 편전, 침전 등이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궁궐의 위엄성이 강조된 데 반하여, 창덕궁에서는 정문인 돈화문은 정남향이고, 궁안에 들어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다시 북쪽으로 인정전, 선정전 등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
세자의 뒤를 이어 종통을 잇게 하였다.
1.2 정조 즉위 전 시대적 상황
정조가 즉위 할 때의 정국의 불안한 상황은 표면상이라도 균형을 유지했던 붕당이 무너진 숙종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숙종 → 경종 → 영조 → (사도세자) → 정조
숙종은 자신의 두 여자를 매개로 남인과 서인을
세자의 뒤를 이어 종통을 잇게 하였다.
1.2 정조 즉위 전 시대적 상황
정조가 즉위 할 때의 정국의 불안한 상황은 표면상이라도 균형을 유지했던 붕당이 무너진 숙종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숙종 → 경종 → 영조 → (사도세자) → 정조
숙종은 자신의 두 여자를 매개로 남인
조선 초에 지어진 궁궐은 여러번의 전란 속에서 소실되었고 폐허로 남아있다가 다시 재건하는 역사를 지녔다. 이 과정에서 아름다웠던 건축물도 사라져 이제는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창경궁은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변해 창경원이 되고, 일제강점기때 조선 총독부가 세워져 경복궁을 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