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한 저서들도 발표되었다. 대표적으로 金承學, ꡔ韓國獨立史ꡕ, 독립문화사, 1965; 申載洪 외, ꡔ韓國獨立運動史ꡕ 3, 국사편찬위원회, 1967; 조동걸 외, ꡔ독립군전투사ꡕ,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등이 있다.
이런 연구성과들은 1980년대 연구에 든든한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였다.
이같은 선각자들에 의해 지도되어 개화운동의 선두에 나서게 된 사람들이 바로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홍영식(洪英植)과 같은 서울양반 가문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외에 위의 선각자들 의 지도는 물론, 청으로의 사행을 통해 서구 근대문물에 대한
연구성과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신기선의 사상적 변화를 추적하고 김옥균, 박영효, 박영교와 같은 개화사상을 지녔던 이들과 교류함으로써 위정척사사상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발전을 모색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또한 신기선의 도기론을 통해 동도서기론의 논
운동과 독립운동
1. 장소
만주, 연해주(※3대 독립 운동 기지 : 삼원보, 한흥동, 신한촌)
2. 선구 단체
신민회
3. 활동목표
a. 경제적 토대 마련
b. 민족교육의 실시
c. 독립군 양성
4. 대한 광복군 정부의 수립
이상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수립, 최초의 임시정부
-무장독립 투쟁의 기반이
대한 이러한 흐름 을 송두율씨는 \"21세기와의 대화\"라는 저술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 하나는 하버마스의 주장처럼 현대성의 기획은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기억이나 철학, 과학, 예술을 매개로 한 자기 정체성과 연관된 체험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현대\"는 \"미완의 기획\"으로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