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재지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5Km, 반구대에서는 약 2Km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천 옆 왼쪽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칼로 잘린 듯이 반듯한 면을 보이며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이 바위가 울주 천전리서석이다. 이 서석은 20도 각도로 비스듬히 앞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전체 면적은 높이 2.7m, 너
신라’를 통해 지금의 시점에서 그 시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시점과 상황을 통해 역사를 보게 된 느낌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신라에 대해 가졌던 늘 비슷한 생각은 책에도 지적되어 있듯이, 하필이면 신라가 통일을 이루어 만주땅을 다 잃었다, 고구려가 통일을 이루었으면 어떠했을까...
천전리 각석 추명에 새겨져 있는 ‘사부지왕자랑’은 사부지왕(입종갈문왕)의 아들로서 당시 6살이었던 진흥왕을 나타낸다.
당시 갈문왕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며 추측컨대 갈문왕의 부인인 지몰시혜비는 자신과 사부지 갈문왕 사이에 낳은 자식인 심맥부(진흥왕)가 자기 아버지인 법흥왕의 뒤를
천전리각석을 토대로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1. 선사시대 울산
1) 신석기 시대의 울산
울산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적지는 15개소 정도이다. 주로 해안과 소하천변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발굴, 보고된 것은 3개소에 그치고 있다. 패총(貝塚)유적이 1개소, 유
신라의 사부지왕(斯夫智王:실성왕)·내지왕(乃智王:내물왕) 두 왕이 진이마촌(珍而麻村:현재 돌막골로 불리고 있음)의 절거리(節居利)에게 재산 취득을 인정하는 교(敎)를 내렸다. 계미년(癸未年:503년) 9월 25일 지도로 갈문왕(至都盧葛文王:지증왕) 등 일곱 사람의 각부대표(칠왕(七王):사훼부(沙喙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