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땅은 보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지불애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땅은 자신이 지닌 진귀한 보물을 중요시하지 않으므로 인간들이 열심히 보물찾기에 매달리면 결국은 발견해낼 것이라는 의미이다. 광활한 중국 땅에는 대량의 청동기가 이 진귀한 보물 중의 일부를 차지하리라는 점은 의심의
고대사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한국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그것에 비교될 만큼 크고 막중하다. 지금 많은 학자들이 저마다 다른 견해를 갖고 있고 심지어는 민족적 대립감정과 결합하여 거의 허구적인 이론까지 제시되기도 하지만 일본인들이 ‘교과서적인 지식’으로 결코 부인하지 않
청동기와 토기, 그리고 갑골문이 발견되고 있기는 하지만 은의 역사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국의 고대사는 주, 그것도 춘추 전국시대부터 비교적 정확히 서술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대사는 역사가에 의한 역사 서술보다 오히려 신화에 의해 재구성되어 있다.
청동기문화의 기반위에 성립 → B.C. 4세기 중국계 철기문화의 수입 → B.C. 3세기의 전성기 → 중국의 전국시대를 맞아 유이민의 유입 → 진․한교체기에 유이민의 유입 → 위만의 무리가 들어옴 → B.C. 194년 위만이 준왕을 쫓아내고 집권(위만조선) → 한과 남쪽의 진 사이에서 중계무
전설이 현재 남아 있는 25사의 한 책인 위서에 보이지 않으니 허구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고려 중기에 편찬된 ‘고려 도경’이나 ‘삼국사기’ 등에도 단군에 관한 언급이 없고 ‘삼국유사’에 처음으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단군신화는 ‘삼국유사’ 편찬 당시 만들어져 유포된 것으로 보았다. 또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