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만 있을 뿐이요, 자칭 조선인민공화국 같은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자 정광조가 유감을 표명하였으며, 11월 23일 김구 등 임시정부요인이 환국하자 ‘임시정부를 받들어 속히 강토를 회복하자’는 지지성명서를 발표 즉 청우당은 부활전당대회에서 민족통일기관 결성 촉진을 결의 하였다.
결국 강제적으로 북한의 정치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를 지지한 민족주의 세력도 상당수가 북한 정치질서로부터 이탈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만식을 비롯한 우익세력의 퇴조는 자연히 공산당과 그의 노선을 지지하는 세력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었다.
2)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와 민주개혁
◎ 한국 문제에 관한 `모스크바 협정`이후 결과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음
미소 양국 간 불화가 고조 됨
미국의 지지세력인 우익진영의 격렬한 반대로 탁지안의 포기를 불가피하게 됨
소련은 북에서 반탁운동을 억압, 좌익 세력으로 찬탁운동 전개를 하면서 모스크바 협정의 이행을 촉구하는
당연시한다. 이 때문에 주어진 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종교적 지식인의 일반적 경향은 이 경우에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보수성을 드러내게 된다. 신의 본래적인 상태를 논의하는 가운데 현실의 부정과 개혁을 주장하는 경우에도, 그 본래적인 상태는 객관화되기가 대단
발휘하였고, 그 성격이 자생적이고, 자주적이었다는 점이다. 건준은 일반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여 좌우 연합의 통일전선 세력으로 출발하였으나 각 세력의 정치적 위상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강대국의 한반도 분할정책을 돌파하지 못함으로써 통일민족국가 수립의 목적은 일단 좌절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