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단편적이지만 기존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해방후청우당의 정치활동과 좌우합작운동, 통일정부수립운동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임정지지와 반탁운동청우당의 정치활동은 교단과 밀접한 관계룰 유지하면서 전개되었다. 우선 천도교는 1
천도교신자 약 1만5천명, 천주교신자 3~4천명 총 3만8천여명으로 인구의 약 0.2% 수준이다(<표 9-10> 참조). 이 중 가장 많은 신도수와 교당을 지닌 종교는 천도교로서, 천도교위원장인 류미영은 김일성 장의위원회 273명 중 39위로 올라가 있으며, 천도교청우당은 북한내 유일한 종교단체적 성격을 띤 정당으
당체계의 일반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중앙집권제적 측면`이 배타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한편 조선사회민주당 및 천도교청우당 등 우당의 역할 역시 노동당의 `방계조직`의 차원이 아니라 계층적 요구를 수용해줄 수 있는 독자적인 결사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적인 활동이 유명무실하다고
당과 상당수 민족주의자들의 결별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북한 주둔 소련군 지도부와 공산당은 당시 매우 큰 위상을 지니고 있던 조만식에게 주의를 돌렸다. 그가 선뜻 모스크바 결정에 찬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찬탁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조만식은 결국 강제적으로 북한의 정치무
활동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내면세계에서 이루어진다.
동학 공동체의 초기 신 개념 및 인간관은 변형을 거듭하여 마침내 천도교 시대에 와서 인간은 신과 같다 또는 인간이 곧 신이라는 견해로 더욱 심화 발전되었다는 것을 보아왔다. 바로 이러한 사상을 통해서 동학 공동체 지식인들은 전래의 성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