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식 제사에서 의식을 거행하는 주체는 큰아들이다. 다른 형제나 자손들은 제사에 참석할 뿐 주재자는 되지 못한다. 결국 제사의식은 전적으로 장자(손)의 주관 하에 치르는 행사이고, 자연스럽게 맏며느리는 제물과 제수 준비를 전담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볼 때 1년에 십여 차례
조선조에 있어서 門中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집단으로써 기능하였다. 이들 문중은 사회구성과 발전에 있어서 기초 조직으로서 중추적 기능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조선조 지방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중이란 ‘종일한 조상’에서 나온 자손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조직̶
1762(영조38)년 6월 16일 사시(巳時)에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京幾道 廣州郡 草阜面 馬峴里)즉 오늘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정재원(丁載遠)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兒名)은 귀농(歸農)이라 했다.
다산은 부친에게서 글을 배웠고 부친의 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닦았다. 4세에 천
1. 서언
禮訟論爭이란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禮論에 대한 학문적‧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 논쟁을 말한다. 조선 시대는 유교, 특히 성리학을 중시하여 정치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유교의 덕목을 준수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에 관혼상제례를 비롯한 각종 의례‧ 의식에 있어서 예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