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주인공만을 필요로 하는가? 주인공의 감정, 주인공의 속성이 사랑을 결정하는가? 내가 사랑에 빠지는 감정은 그 어느 것으로도 독립된 완전한 나만의 감정이던가?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던가? 만약 오직 두 사람만의 연극이라고 생각했던 사랑 속에
결혼 후 그는 Union Theological Seminary에 들어갔다. 이 학교는 그 당시 가장 자유스런 신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그는 놀랍고도 중요한 경험을 하는데 그것은 자유스런 세미나의 경험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느낌대로 그 결과가 어떠하든 흘러가는 그의 비지시적 상담의 모형을 체득 한 듯
아빠가 누구냐는 덕훈의 대답에 "두 사람 모두라니까"라고 답한다. 그런데 이렇게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인아도 덕훈이 수경이란 여인과 만나는 것을 보고는 화를 낸다. 그런데 덕훈은 인아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수경과의 만남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는다.
결국 아내의 임신과 출산, 이로 인해 세 사람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운증후군이 우리의 이웃으로 옆에 있지만 우리의 오해와 편견은 많다. 우리가 이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함께 상호 작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 조의 생각으로는 그것은 일반인들이 다운 증후군에 대해서 지식을 제대로 갖추고 그들에 대한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1993년 6월 25일 세계인권대회는 「비엔나 선언 및 행동계획」에는 인권차원에서 장애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문제는 복지서비스의 확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권 측면에서 접근할 때라야 비로소 장애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