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의 재구성에만 그친 감이 없지 않다. 이는 물론 ‘이광수’라는 특정 문인의 친일문학만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발생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친일담론’을 ‘식민담론’으로 끌어올리지 못하였다는 점과 ‘식민담론’과 ‘식민지 계급구조의 재생산’이 갖는 문제를 함께 고찰하지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김용제(1909~1994): 호는 지촌(知촌村)이고 충북 음성출생이다. 1930년 일본 추우오대학을 중퇴하고, 노동생활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에 투신하였다. 1929『新興詩人』시인 현상모집에 ‘압록강’이 당선 되면서 일본 좌익 문단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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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개칭하면서 일반화되었다)이 문학에 국가 관념을 도입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앞으로 한국의 국민정신에 입각해서, 한국의 국민생활을 선양하는, 한국의 국민문학을 수립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의 식민지적 국민문학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는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친일파의 친일행위
내선일체와 민족말살
민족 해체․말살작업의 구체적인 정책의 첫째가 창씨개명이었다. 개인적 혈통의 표상인 성(姓)을 전체적 가(家)의 표상인 일본의 씨(氏)로 바꿈으로써, 씨족 → 혈족 → 민족의 관념을 일본적 가족 국가 관념으로 대체시키려던 것이었다.
다음, 민족 말살
일본은 한반도를 완전 식민지로 만든 후 식민지 경제체제를 확립하는 방법의 하나로 무엇보다도 먼저 ‘토지조사사업’을 실시.→ 근대적 ‘토지소유권’ 확립
②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한 일차적 목적은 막대한 총독부 소유지를 확보하여 식민지지배의 경제적 기반을 만드는 데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