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는 기껏해야 참된 문화의 가치를 낮추고 천박한 복제품을 위해 날재료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위조된 거짓 감각에 대한 `대중적 취향`에 지나지 않는 의미로 비추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산업사회에서 키치라는 문화 현상은 폭넓게 만연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미학적 분석이
교육하는 예술이 정치적 예술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형식은 ‘역사’를 재현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의 사물화된 지각적 특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동시대 예술의 특징적인 형식들이 어떻게 역사해석을 방해하는지를 이해해야, 역사성을 복원할 방법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을 마주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미술관의 위대한 예술들을 경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술관은 교양 있는 감수성에 의해 키치라고 분류되는 작품들을 종종 전시한다).사실상 그들은 키치작품들이 그런 위대한 작품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전쟁의 파괴
키치를 "폭넓은 역사의 스타일이며, 근대적 시대정신의 구체적인 구현"으로 받아들이게 된 1917년 이후부터이며, 이 때부터 이 용어는 "현대 언어에서 예술적인 나쁜 취미를 지칭하는 수많은 용어들 중 진정하게 국제적 지위를 획득한 유일한 용어"로서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키치의 어원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