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청대의 예술
청대에는 회화뿐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서 큰 진보을 이루었고, 서로 유기적으로 발전해 나갔다.건축에서는 건륭황제 초기에 출판된 <공정주법칙례>에 의하여 건축물의 구조가 규격화되었고, 유럽의 고전 양식 건물이 나타났다. 중국 고궁의 3대전(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이시기에
팔대산인(八大山人)을 중심으로하는 유민화가 사승(四僧)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대담하게 개성을 표현하여 창조적인 경향을 띠는 혁신적 개성주의 화가들이 있다. 또한 중기에 이르면 북경과 양주 두 곳이 회화의 중심지가 되는데, 북경은 사왕과 운수평의 화풍을 이어 경직되는 방향으로 회화 경향
청 초 화단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일신시킨 것은 석도石濤와 팔대산인八大山人을 수장으로 하는 일군의 창조적인 화가들, 즉 회화사에서 명의 유민화가遺民畵家라 불리는 화가들이었다. 석도와 팔대산인은 서로 달랐다. 팔대산인은 그의 기이한 그림으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그가 왜 그
팔대산인(八大山人), 석도(石濤), 석계, 매청, 공현, 사사표, 홍인, 전산을 말한다. 이들 중 홍인(弘仁: 1610~1644)과 공현(賢: 1620~1689)처럼 극단적인 대비를 보이는 화가도 없을 것이다. 안휘(安)의 승려인 홍인은 위기를 초월함으로서 어려움을 맞서나갔으며, 예찬(倪瓚)의 산수화에 가까운 탈속적인 순수한
팔대산인 이후 매너리즘에 빠진 청대 화단에 근대적이고 새로운 감각의 문인사의화 사의화라는 개념은 외형적으로는 粗筆大墨을 사용하며 減筆法을 위주로 하는 화풍을 말한다. 寫意란 重思尙意를 뜻하는 것으로서 종사는 書法入畵를 필요로 하며, 尙意는 화가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