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인가?” 왜 그의 작품 세계가 상징주의, 더 나아가 20세기 현대문학의 전환점 혹은 시발점이 되고, 왜 그가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적인 작가로 추앙받으며, 왜 그의 작품이 문학을 넘어서 다양한 예술장르의 소재로 활용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위해 본고는 제 1절에서 먼저 보들레르의
프랑스로 망명하고 『농담(La Plaisanterie)』이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유명작가가 되었다. 2차 대전을 지나오며 그는 대학생, 노동자, 바의 피아니스트를 거쳐 문학과 영화에 몰두했다. 시와 희곡작품들을 썼고 프라하의 고등 영화연구원에서 가르쳤다. 1975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르네 대학에서 비교문학
문학에 있어서의 보들레르와의 연관성을 지적해왔다.
현대시의 아버지 랭보의 보들레르에 대한 찬양을 인용하자면 "최상의 견자(見者), 시인들의 왕, 진정한 신"이라고 했으며 발레리(Paul Val ry)는 "보들레르와 더불어 프랑스 시는 마침내 민족적인 한계성을 넘어서 성장했다. 프랑스 시는 곳곳에서 독
미학을 제시하면서 상징주의 경향의 시를 썼다. 보들레르는 상징주의가 탄생하기 전에 사망했지만 그의 작품과 시의 이론 때문에 그를 상징주의의 선구자로 간주한다.
또한 그는 낭만주의와 고답파의 모든 시적환경과 주제는 이어받았으면서도 시의 표현과 질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일으켜, 현대시
보들레르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보들레르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는 소위‘사악한, '비이성적' '도피적인’'추한'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 속에 놓여 있던 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한다. 물론 보들레르에 대한 연구는 철학적, 미학적, 심리학적 차원의 여러 분야를 통해 검토되고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