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의 동맹 관계를 기초로 한 중유럽 구상이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독일의 대외적 관계의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 외교는 그 뒤 15년간 한편에서는 러시아의 영국과의 동맹을 차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 심지어 프랑스와의 동맹에 기초한 대륙 동맹을 구상하는
협상의 결과 독일이 추구하여온 러·불 동맹과 영국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추구하는 정책의 적실성이 없어지게 되었다. 독일이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은 오로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뿐이었다. 또한 영·불 협상의 성립은 이미 존재하는 러·불동맹과 연계성을 지니게 되어 오랜 숙적이던 영국과 러시아
영국․프랑스협상 성립에 의하여 시작되고 있었다. 이 2대 식민제국은 세계 각지에서의 양국의 대립을 해소하고, 특히 이집트와 모로코를 서로 상대국의 보호령으로 인정하여 협정을 맺었다. 이어 영국과 러시아도 라․일 전쟁 후 중국에서의 대립이 완화됨으로써 접근하기 시작하여, 독일의 근
프랑스는 모로코에 대한 보호권을 획득하였으며, 그 대가로 독일은 프랑스령인 콩고의 북부를 양도받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유럽 열강의 대립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2.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
-사라예보 사건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시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영국과 프랑스였으나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는 수세에 몰리게 된다.
1. 1870년 대 이전의 중 ․ 서유럽의 상황
1850년부터 1870년까지의 역사는 내셔널리즘의 승리의 시기로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은 내셔널리즘의 가장 주목할만한 성과로 간주될 수 있다. 두 나라의 민족통일은 오스트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