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전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성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다. 프롬은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서 보다 깊은 관심을 품게 되어, 대학에서 원래 법학을 공부했다가 심리학과 철학 그리고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고 정신분석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세계와 일본의 대학가를 강타한 학생 운동의 지적 배경이 됐다. 이 학파의 중심 인물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허버트 마르쿠제, 테오도어 아도르노, 에리히프롬, 카를 비트포겔, 레오 뢰벤탈, 프리드리히 폴로크 등이었다. 푸코에 의하면 (종교, 법, 지식과 같은 세 영역의) 권위의 힘에 의하여 인간
대전이 터지자 세계의 참상과 인간의 광기에 충격 받았고 인간의 파괴본능과 히스테리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1차 대전 후 프랑크푸르트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 뮌헨 대학 등지에서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였으며 20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열렬한 탐
세계에서는 마침내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절망감이 뒤따르게 되고 이렇게 되면 인간의 모든 귀중한 능력을 차단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닥쳐온다. 결국 이런 현상은 인간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심리적 난장이로 만들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파괴적인 권위주의(파시즘, 나치즘)에 항복하게 하는 결
에리히프롬은 1900년 3월 23일, 독일 상공업의 중심지였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어떠한 지역들보다도 자유주의적이고 계몽적인 정신이 강한 도시였다. 부모는 모두 유태인이었고 프롬은 외아들이었다. 프롬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인간들의 비합리적인 성향과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