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장인가, 개혁인가?)
19세기 후반 한국의 근대개혁운동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1894년1월 초 농민전쟁의 시작에 이어 6월 말 청일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출범한 새로운 개혁정부는 조선국가의 근대적 개혁을 수행했다. 이를 당시에는 대경장(大更張)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빌려와
문호개방과 대외통상의 필요성은 이미 북학파 실학자 인 박제가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또 개항전에도 김정희(金正喜), 박규수, 오경석 등 일부 선각자들은 청 의 양무운동과 양무론자들의 저술을 통하여 세계정세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견을 일부 청년들에게 전파하고 가
. 그 가운데 한국역사연구회가 다년간에 걸쳐 근대사연구의 신진 기예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동원하여 편찬한『1894년농민전쟁』1˜5(역사비평사, 1988˜1995)는 농민전쟁의 배경?전개?귀결을 경제?정치?사상 등의 제분야에 걸쳐 종합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성공적인 대기획물이다. 이 기획에 참가한
한국사 : 청일전쟁과 갑오개혁』(서울 ; 국사편찬위원회, 2000), p.192.
다섯째, 근대적 사법기관을 설치하였다. 개혁 이전의 조선 사법제도는 고문과 연좌율 등 비합리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다. 이에 군국기무처는 이 두 가지 제도를 폐지하는 동시에, 경무청을 설립하여 체포 및 처벌에 있어서도 반
갑오개혁의 정책 수립에 있어서 근간이 되었다.
② 갑오농민군(동학농민군)의 개혁요구
또 하나의 주요 배경 중 하나는 갑오농민군의 개혁요구에 있다. 안으로 사회를 개혁하고(반봉건) 밖으로는 외래 자본주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민족 주체적 개혁운동(반외세)을 일으킨 것은 갑오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