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논자에 따라 실로 다양하나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잔학하고 완명한 폭군이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강력한 실천력을 가진 개혁가라는 평가이다. 거의 대부분의 논자가 천주교도의 처형과 쇄국정책에 대해서는 전자의 폭군이론에 의거하고, 서원철폐와 호포
Ⅰ. 서론-대원군에 대한 인식
대원군에 대해서는 흔히들 서세동점의 거친 물살 속에서 조선을 지킨 ‘쇄국의 인물’ 정도로 통념화되어 있다. 오해와 진실이 상당 부분 중첩되어 있는 대원군은 그의 집권기간을 통해 광범한 범위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의 변모를 꾀했지만, 이런 노력들이 근대의 교
Ⅰ. 서론-대원군에 대한 인식
대원군에 대해서는 흔히들 서세동점의 거친 물살 속에서 조선을 지킨 ‘쇄국의 인물’ 정도로 통념화되어 있다. 오해와 진실이 상당 부분 중첩되어 있는 대원군은 그의 집권기간을 통해 광범한 범위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의 변모를 꾀했지만, 이런 노력들이 근대의 교
대원군은 고종에게 자책교지를 반포하게 하여 구식군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한편, 민비의 유고 상태를 기정사실화 하기 위해 민비의 국상을 반포했다. 이어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혁파하고 삼군부와 5군영을 복구시킴으로써 종전의 개화정책을 백지화시켰으며, 민씨 척족세력을 제거하
대원군의 인재등용은 외적 명분과 함께 외척벌열의 견재라는 내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권기반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세도집단과도 일종의 연형을 꾀하고 있었으며, 인재등용이라는 명분하에 정권의 구도를 재편하고자 했다. 그리고 기존의 연구에서 평민층의 등용으로 높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