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흥선대원군의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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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흥선대원군의 재평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대원군에 대한 인식

Ⅱ. 대원군 집권기의 시대상황

1. 국내 상황
1) 정치
2) 사상
3) 경제

2. 국제 정세
1) 일본
2) 청
3) 미국
4) 러시아

Ⅲ. 대원군을 바라보는 시각

1. 비판론
1) 내적측면 - 개혁정치의 한계성
2) 외적측면 - 대외정치의 한계성

2.옹호론
1) 개혁적 성향의 내정정책
2) 대원군의 대외정책 - 다각적 외교시도

Ⅳ. 결론-대원군의 재평가

1. 대원군 평가에 대한 필요성
1) 내적인 측면에서의 유사점
2) 외적인 측면에서의 유사점

2. 대원군에 대한 평가 정리

3. 대원군의 현재적 의미


◎ 참고지식 - 자유무역협정 (FTA)

참고문헌
본문내용
① 경복궁중건 - 경제질서 왜곡

중건 자금 마련을 위해 원납전(願納錢)과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했으나 원납전은 원납전(怨納錢)으로 변질되었고, 상평통보(常平通寶)에 비해 액면가치는 100배지만 실제가치는 5, 6배에 지나지 않던 당백전은 경제질서를 심하게 왜곡시켰다.

② 인재등용 - 전근대적 왕조질서 유지를 위한
전통적 용인

대원군의 인재등용은 외적 명분과 함께 외척벌열의 견재라는 내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권기반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세도집단과도 일종의 연형을 꾀하고 있었으며, 인재등용이라는 명분하에 정권의 구도를 재편하고자 했다. 그리고 기존의 연구에서 평민층의 등용으로 높게 평가되던 부분도 사실은 대원군의 사조직을 강화시켜 특정부류의 평민들을 편입시킨 것이지, 그들이 국가의 공적인 행정기구 안에서 능력본위로 발탁되어서 양반지배층과 대등하게 관직에 취임했던 것은 아니었다.

③ 서원철폐 - 봉건적 왕조체제의 재편과 강화를 위한
재원의 확보

대원군의 서원철폐는 평민의 재산을 침해하는 사가들과 완고한 유생을 숙청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것의 궁국적 원인은 서원의 비대화로 인해서 국가재정에 손실이 가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이래 향촌에 대한 지배권이 재지사족으로부터 관주도의 향촌통제책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원군은 관주도의 향촌통제책을 좀더 강화하고 지방과 중앙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서원에 대한 철폐작업을 강화시켰다. 그러므로 그의 서원 철폐작업은 국가의 재정확보에는 일정하게 기여했지만, 재지사족의 대민착취를 직접 감소시킨 것은 아니었다.

④ 비변사 혁파 - 자신의 정치세력 증가와 왕실재정확보를
통한 왕권강화

대원군은 귀족벌열들이 발호하던 중심기구인비변사를 혁파하고 의정부 기능을 정상화시켰으며, 군사제도의 개혁을 통해서 식민주의의 침략에 대비했다는 점이 강조되어왔다.
세도정치 시기 비변사는 국가의 재정과 군사력을 통찰하고 있었고 주요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대원군은 집권초기에 이 비변사의 명칭을 의정보로 개편했다. 그러나 비변사가 의정부로 명칭을 바꾼 다음에도 의정부는 비변사 업부의 대부분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었다. 즉,의정부는 비변사의 업무권한을 양도받으며 원래의 의정부 관직들을 복구했지만, 비변사의 관행이 유지되던 가운데 진행된 의정부관직의 복구는 제도상으로 볼 때는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또한 비변사가 의정부로 개편된 이후 의정부의 당상의 수적 증가가 있었는데 이는 기존의 비변사를 배경으로 하는 정치세력외에 대원군 자신의 정치세력을 의정부에 편입시키는 과정이었다. 즉,대원군은 의정부에 배속된 자파의 인물들을 통해서 의정부 휘하로의 재편이 확인된 여러 관서들에 대해서 실질적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대원군이 비변사를 혁파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삼군부의 독립에 있었다. 비변사가 최고 권력기구로 존속하는 한 무부를 독립시킬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비변사를 의정부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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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강의/한국근현대사연구회 편/한울/1997
박현수/韓國近現代史論文選集 . 34 : 對外(4)/삼귀문화사/2000
한국사,37, 40/국사편찬위원회/2000
연갑수/대원군집권기 부국강병정책 연구/서울대학교 출판부/2001
박노자,허동현/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푸른역사/2005

주진오,조광,유봉학,이헌창,김필동/토론:19세기, 근대로의 이행인가 반동인가/역사비평 1996년 겨울호/역사문제연구소/1996
임형택/문화현상으로 본 19세기/역사비평 1996년 겨울호/역사문제연구소/1996
박광용/19세기 초․중반의 정치와 사상/역사비평 1996년 겨울호/역사문제연구소/1996
고석규/19세기 초․중반의 사회경제적 성격/역사비평 1996년 겨울호/역사문제연구소/1996
연갑수/대원군 집권기 국방정책/한국문화 제20집/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1997
연갑수/대원군과 서양-대원군은 쇄국론자였는가-/역사비평 2000년 봄호/역사문제연구소/2000
박광용/17년 만에 다시 반성적으로 제기한 대원군집권기 연구/역사와현실 40권/한국역사연구회/2001
장영숙/왕조의 유산 속에 근대의 교량을 넘어서지 못한 대원군/내일을 여는 역사 23호/내일을 여는 역사/2006
연갑수/흥선대원군에 대한 오해와 진실/내일을 여는 역사 23호/내일을 여는 역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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