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 등 발전이 있기도 했지만 국제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동아시아 국가 간에는 서로 교류가 있었던 반면, 서양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편전쟁 후 청의 개항을 시작으로 일본과 한국이 뒤를 이어 개항을 했고 서양과 조약을 체결했다. 폐쇄적이고 중국 중심이었던 동아시아 사회는 개
사실화 하기 위해 민비의 국상을 반포했다. 이어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혁파하고 삼군부와 5군영을 복구시킴으로써 종전의 개화정책을 백지화시켰으며, 민씨 척족세력을 제거하고 자신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2) 외세 개입과 청의 대 조선정책의 변화
임오군란을 계
사관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서술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른 7종 역사교과서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통신사에 의한 조선으로부터의 문물 전수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이를 오로지 양국간의 인적 교류로 등치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국으로부터의 문물 전수가 아
조선과 중국은 근대화에 대한 관심이 민중들에게까지는 전달되지 못한 몇몇의 지배층만에 의한 개혁이라 할 수 있다. 민중의 근대화에 대한 인식이 개혁의 성과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중국과 한국은 부분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었지만 실패로 볼 수 있고 일본은 급진적이고 대대적